하지만 여행 중에는 우려했던 감정들은 단지 허상임을 깨닫게 되는 법.
여행은 언제나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동안 방치했던 자신과 대면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감동이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공지란에 직원 능력 개발 취지 아래 (독서 후기 작성)이라는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그리고 인사평가 점수에도 적용된다고 떴다.
(야유와 비난적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퍼졌다)
하지만 난 그 공지 덕분에 이렇게 독서와 친하게 되었다.
이제는 하루라도 책과 만나지 않으면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다시 본론으로 새로운 여행(책모임)은 기대와 불안의 감정에서 만족으로 바꿨다.
마산에서 5년간 거주했지만 ‘가로수길’이라는 멋진 곳이 있는 지 몰랐다.
우선 아름다운 '가로수길'을 걷을 수 있음에 행복했다.
또한 멋진 배경 사진을 찍게 해준 책모임에 감사했다.
(슬픔이여 안녕)을 읽고 느낀 점은
제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이 끝난 후 상위 1%만 누릴 수 있는 감정과 쾌락을
즐기는 세실, 레이몽, 엘자, 시릴 등장인물들이 공감되지 못했다.
하루 한끼도 제대로 못 먹고 사는 현시점에서 사랑, 쾌락, 슬픔이란
말하는 그들이 가엾고 추락한 인물로만 보여졌다.
진정한 사랑도 모르는 철없는 인간들, 그 생각만 갖고 독서 모임에 참석했다.
그 생각이 얼마나 얕은 결론인지 독클 멤버 의견 경청후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책읽은 소감, 등장인물 분석, '슬픔이여 안녕'은 어떤 의미인지 찾아보았다)
2시간이 눈 깜빡한 것처럼 너무 빠르게 흘려갔다. 더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었다.
멤버의 가치관도 인생관도 사랑관도 직업관도 밤샘 토론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왔다.
베트남 다낭에서 과자를 사왔다는 00님 덕분에 베트남 과자를 맛있게 먹었다.
인생의 연륜에서 품어져 나오는 예리한 분석으로 더 깊고 맛있게
토론하셨던 00님과 00님 덕분에 더욱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00님과 00님은 안느의 죽음으로 우울하고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그 배신감을 어떻게 희석시켜야 할지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처럼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갖고 살고 싶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안느가 ‘왜 그리 사니, 걱정덩어리야’라고 말하는
슬픔이 다가올 때마다 세실처럼 웃으면서 ‘슬픔이여,안녕’이라고 나의 감정을
훼손하지 않고 그 주장을 손님처럼 맞으며 공손하게 보내주는 세실이 되고 싶다.
(책모임 후 책을 쌓고 찍는 재미)
모임 후 독클 멤버가 전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배려에 감동했다.
소중한 사람들과 프랑수아즈 사강 (매혹적이고 악마 같은 누나)를 알게 되고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또한 나도 배려와 다양한 의견을 받아드리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되겠다고
자신에게 속삭이며 즐겁게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행복한 여행이었다. 진심으로'
<토론했던 내용들을 정리해 봅니다>
1. 책읽은 감상
소확행 -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2018년 대한민국 소비트렌드로 선정되었다)
원래 소확행이란 말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쓰인 말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 때,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속옷을 볼 때 느끼는 행복과 같이
바쁜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을 뜻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 어쩌면 사강이 말하는 것처럼
안느와 같이 자신의 인생을 절재하고 확신을 가진 지성적인 면보다는
관능에 치우치고 쾌락에 더욱 쉽게 끌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문체와 새로운 사건의 전개가 소설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2. 등장인물에 대해서 (세실, 레이몽, 안느, 엘자, 시릴)
3. 자신의 사랑과 인생에 만족하는 것 같은 세실은 자꾸 안느를 의식한다.
세실이 이토록 안느를 의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실과 안느의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봅시다.
이기적으로 살고 쾌락과 관능을 쫓으면 안되나요?
자유로운 세실은 왜 안느를 부러워할까요?
4. 세실에게 찾아온 슬픔은 무엇이었을까요?
세실에게 슬픔이란 무엇인가?
‘나른함과 달콤한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나는 망설인다. 그 감정은
너무나도 자기 자신에게만 구애되는 이기적인 감정이며, 나는 그것을 매우
부끄러워하고 있다. 더구나 내게 있어 슬픔이란 언제나 고상한 것으로
비춰지고 있었으니 만큼
나는 이제까지 나른함, 뉘우침 그리고 드물게는 양심의 가책까지도 알고
있었지만, 슬픔은 경험한 일이 없었다. 지금은 비단처럼 부드러운 그
무엇인가가 나를 덮어씌우고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갈라 놓으려 한다.‘
안느란 바로 세상과 사회가 말하는 올바른 인생의 길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세실에게는 그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 여긴다.
그리고 그 슬픔이라는 생각이 자신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건넬 때
세실은 ‘생각하는 자유, 부당한 것을 생각하는 자유, 도를 지나쳐서 생각하는 자유,
나 자신이 내 인생을 선택하는 자유, 그리고 나 자신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를 선택한 세실이 너무나 우아하고 지성적인 사람으로 비춰졌다.
독서 모임은 내가 읽은 관점과 시각을 정립하고 모여서 대화하지만
그 여러 관점과 시각 그리고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공유하면서
새롭게 작가의 메시지와 가치관을 깨닫게 되고 재정립하는 진정한
독서 후기 마감이라고 했던 친구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소중한
독서 모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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