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세상으로 나왔을 때도 분명히 다른 갓난 아기처럼 '응앵~~'하며 울면서 나왔고
가족들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어머니는 특히 아들이라는 이유로 더욱 기뻐했다고 한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우리 금덩어리'
참고로 우리 엄마는 6남매에게 줄기차게 '보석덩어리들, 금덩어리들'이라고 불러주셨다.
엄마의 말씨 덕분에 우리 6남매는 '보석으로, 금으로' 강하게
자신을 단련하며 자존감이 강한 사람으로 훌륭히 성장했다.
나의 딸에게도 내가 '우리 금덩어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
금덩어리야, 너의 이름은 이 아빠가 직접 짓었단다.
'지혜로움'과 '보물'이 들어간 한자로 말이야. '혜진'
타인들은 이렇게 지적하기도 했지,
유명한 철학관이나 절 같은 곳으로가면 재물운과 인복이 많은 이름 지어준다며 추천해 주기도 했단다.
우선 너 운명은 네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아빠는 생각해,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평생 부르고 싶은 이름이니까,
엄마와 아빠가 이쁜 이름 2개를 선택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의견을 여쭤보고 결정한 거니까,
자부심을 갖고 너 이름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어쩌면 네가 그렇게 살았으며 하는 마음과 이 세상에서 그렇게 대우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단다.
꼭 그렇게 살아주라. 엄마,아빠의 바램이다.
1980년 먹고 살기가 힘든 시절 나의 아빠, 엄마도 6남매를 먹여 살리라.
고단한 삶을 사셨다. 아빠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엄마는 일용직 식당
요리사로 봄이 되면 두 분은 농업인이 되셨다.
남의 밭을 관리해 주는 조건으로 적은 임차료를 내며 자연의 선물을 소비자에게 주는 농업인이셨다.
산딸기와 뽕나무(오돌개) , 앵두나무, 밭에 심어둔 야채가 상품으로 이쁘게 성장하면 수확하여 시장에 내다 팔았다.
내가 살던 동네는 주민 대부분이 우리 부모님과 별반 다름없는 직업에 종사했고
봄이 되면 산딸기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난 어릴 때 친구들과 같은 추억을 갖고 있다.
'인근아, 혁아, 배고프지 않아,?' '응, 배고픈데,
그럼 우리 밭에 가서 산딸기 한 바구니 따와서 설탕 넣고 비벼 먹을래'
'밭에 간 김에 그럼 앵두랑 삐삐도 따와서 먹자'
(한 바구니에 산딸기 넣고 설탕 듬뿍 넣고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비벼서 먹고
토스트빵에 우리가 만든 산딸기잼을 듬뿍 넣고 한 입 베어 먹으면
그 어떤 부자보다도 부럽지 않는 추억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 시장에 판매되는 산딸기 그 시절 맛이 나지 않는다.
한바구니에 산딸기가 들어가야지 그 맛이 나려나 한번 해볼까.
그 때 우리들 아빠는 인분뇨를 어깨에 메고 지게로 옮겼던 기억이 난다.
농약으로 땅을 관리해서 그런지 지금은 산딸기 나무들이 기운이 없어 보인다.
왠지 바람이 불면 흔들 풍선처럼 왔다리 갔다리 할 것 같은 나무 모습이다.
우리 남매도 추억이 있다.
'아빠가 한바구니당 천원씩 쳐줄테니까' 마음껏 따라며 금전관계는 확실하게 계산하셨던 추억,
그리고 점심때 먹었던 자장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산딸기 따는 모습은 이런 행동이었다.
'산딸기 하나 따서 바구니에 담고, 또 다시 산딸기 하나 딴 거는 내 입으로 담았다'
아빠는 그 모습을 흐뭇해 하시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곰돌아, 너한테는 아빠가 천원 주면 안되겠다. 누나들은 따는데 바쁜데
너만 먹는데 바쁘네, 아빠가 돈을 받는 게 맞는거 같은데, 천천히 따렴.'하고 웃으며 말했던
그 시절 젊은 나의 아빠가 무척이나 그립고 아빠가 보고 싶다.
또 한가지 잊을 수 없는 맛이 있다.
바로 산딸기 속 벌레가 잠시 휴식하는 것도 모르고 입으로 사정없이 넣었던 그 무지막지한 묘한 맛.
누가 그 맛을 알겠는가,
톡 쏘면서도 고약한 그 맛,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나는 뱉지 않고 그 맛을 음미했을까,
미식가가 되고 싶었을까, 그 맛은 벌레에 따라서 확연히 달랐던 기억이 난다.
신기하게도 어떤 벌레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던 그 때의 나,
아마도 그때 산딸기를 업종으로 했던 사람이라면 그 맛을 아시겠지?
하여튼 그 시절에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당연히 부모님의 일을 도와가며 살아가는 게 행복이고 즐거운 일상이었으니까.
그 일상속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은 바로 가족애만 있으면
어떤 고난도 웃음과 보람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소중한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