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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가정의 달

첫 연휴가 드디어 끝났다

사랑하는 딸은 (로블록스 게임)에 푹 빠졌고

엄마는 (코성형수술) 후 휴식 취하는 중

아빠는 (눈물의여왕) 드라마에 푹 빠졌던 3일이었다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다보니

왜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보면서

나도 모르게 극중 대사나 상황극에 푹 빠져서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 잘모르겠다

 

 

5월 5일(일) 어린이날

사랑하는 딸은 로블록스 함께 하는 친구랑 다툰 모양이다

아빠, 심심해. 우리 같이 놀자면서 자기방에서

시나모롤 마이크로 네모블럭

어린이집에 다닐때 아는 동생이 줬다면서

이걸 함께 블럭 만들기하자고 들고 왔다

 

 

처음에는 귀차니즘 때문에

무슨 블럭 맞추기냐 했는데

결국에는 아내와 아빠가

그 재미에 푹 빠졌다

은근히 하나 하나 퍼플이 완성될때

느껴지는 짜릿함은 잊을수가 없다

 

 

가족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요?

홍해인이 시한부 선고를 받고

끝내 응급실로 실러갈때 했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을 못하면 억울해서 안되는데

 

 

사랑해요

고마웠어요

미안했어요

감사했어요

가족과 옆에 있어줬던 사람에게

늘 속에 있는 말은 하지 않고

체면치레 때문에 쓸데없는 말만 했다는 사실을

 

 

나도 반성해본다

블로그 기자단을 하면서

결재가 늦어지면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결과적으로는 한번도 대가를 받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까지 한번도, 괜히 고민만 했다는 사실

 

 

그리고 주식 투자를 했으면

자신만의 투자 원칙이 있어야 하는데

예전처럼 내가 그래프를 맞추려고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

배당금 주는 회사를 믿고 묵묵히 주식을 모아가야 한다

내가 아는 회사 주식을 사야 한다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겠지만

금요일 밤에만 주식창을 보자

그 외 시간에는 오로지 일에만

오로지 책에만 집중하자

차트본다고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5월 5일(일) 아는 지인 부친상

죽음은 정말 피할수 없는 것

왜 어리석게 그걸 까먹니?

정말 무엇이 중헌지 모르니?

아내에게 져주고 아내편이 되어라

아이에게는 사랑을 더 듬뿍줘라

엄마와 형제들에게는 기원을 많이 보내줘라

세상에게는 관심을 많이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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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좋은 드라마를 만났다

 

 

 

떠나신 분께서

하고 싶었던 말

 

 

전하고 싶었던 생각

 

 

우리가 대신

읽어 드리는 거야

 

 

무브 투 헤븐

(안식처,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것)

 

 

한 상자에

모든 추억이 담긴다

 

 

후견인이 되어 주길 희망하는

유언장

 

 

내가 이 집 주인이거든

 

 

3개월의 동거 기간 동안

 

 

무브 투 헤븐의

직원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그 시체 처리인지 뭔지

그거 말하는 거냐?

 

 

현장은 돌아가신 분들

집입니다

 

 

마지막 이사를 시작하겠습니다

 

 

가족도 안 가져가는 쓰레기

가져가서 뭐하려고?

 

 

누군가의 가장

마지막 이야기

 

 

사랑하는 분에게 남기신

편지가 있습니다

 

 

다양한 사랑을

존중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위해 주는

한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뿌뜻할까?

 

 

전하지 못한

당신의 마음을

 

 

무브 투 헤븐이

전해드립니다

 

 

죽음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된 소중한 드라마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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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출근하면 제일 먼저했던게

바로 (아비무쌍) 웹툰을 정독하는 것이다

노가장이 성장하는 모습에 응원하면서

 

(노가장)

아내와 사별하고 아이 3명을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

나라면 노가장처럼 생활할수 있었을까?

 

 

 

나 또한 40대중반의 김가장이다.

사랑하는 딸이 한 명있다.

그 딸로 인해 나는 아빠라는 소중한 이름을 선사받았다.

그 딸의 기준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도 선물받았다.

 

 

아비무쌍 완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독자로서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어서

이렇게 (후기)를 나름 정리해본다

 

 

여러분의 노력 덕분에 행복했어용.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요즘 뉴스를 보는 게 힘겨웠는데,

기댈 때가 웹툰이네용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청년)

그 청년에게 자신을 갈고 닦을 수 있는 무술을 가르쳐준 노가장

어른이라면 젊은 세대에게 사랑이 담긴 온기를 전달해줘야 한다

 

 

정말 아빠가 로망하는 장면이죠.

집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가족들이

나를 환영해 주는 모습이 있다면,

더럽고 치사한 사회에서 욕 먹더라도,

힘겹게 돈을 버는 목적이 있잖아요

바로 (가족)

 

 

(아빠 왔다)

하지만 현실은 무반응이죠.

아빠 왔어... 사랑하는 딸은 핸드폰 게임한다고 인기척도 안하고,

아내는 눈빛으로만 인사를 건네는 게 현실이죠머.

 

 

연애를 하고 싶은데,

이쁜 사랑을 하고 싶은데,

고민하는 여러분들,

(노가장처럼 살면 됩니다)

 

아이들이 웃는 세상을 만드는 게 우리 어른들의 몫

세상이 험하고 지독하게 흐려가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무관심하지 않고

오로지 관심을 가지고 작은 힘이라도 보텔께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님들

당신의 노고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보내드립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한 사람은

가장에 돌아가면 한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소중한 아들, 딸입니다

소중한 엄마, 아빠입니다

소중한 누나,동생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마세요

 

당신들 덕분에 이세상은 아름답게 한걸음씩 움직인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위치에 있든 명함이 있든 없든

당신의 소중한 힘이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답니다

 

아비만큼 세상에 견줄수 있는 게 없다.

아빠만큼 위대한 것은 없다.

아빠가 되어보니까, 그 자리가 참 쉽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오늘도 자신의 위치에서

노고해주는 아버지들에게

나의 후기를 마음을 전해주고 싶네용

(아버지들 가끔은 울어도 됩니다)

(아버지들 당신들 덕분에 오늘도 가정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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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본부 직원이 '경남 진주'에서 잠시 봤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다.

본부에서 전화가 오면 ...

왠지 모르게 게름칙하다.. (기분이)

 

지금 근무하는 곳에 발령 받은 지 벌써 6년

그래.. 느낌상 다른 곳으로 발령 나는 걸까..?

 

나름 생각하고 나의 고향 진주로 향했다.

근데 마주보면서 대화 나눈 결과..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어느 누가 '클레임'을 접수했단다.

주말에 연락이 되지 않는다?????

 

내가 주말에 받지 않은 전화가 있었나...

'클레임'은 그냥 '클레임'이다..

나에게 어떤 원인이 있는지 물어보면 안된다..

 

그냥 일하는 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접수하는 게 클레임...

 

왕복으로 2시간가령 걸리는데..

그 클레임 소식을 듣기 위해..

고향 진주를 방문했다는 게

그냥 어이가 없다..

 

본부 직원은 나에게 말했다.

'옐로우 카드'를 받으셨네요..

한번더 받으면 '레드 카드'로 근무지가 이동될수도 있답니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냥 이런 일로 왕복 2시간 거리를 오라는 사람의 심정도..

(본부에서도 명확하게 언제 전화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 어느 누가 클레임을 발설했는지 말해줘야 한다)

그냥 전화로 해도 되지 않나 ㅋㅋㅋ

 

솔직히 나는 내가 근무하는 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본부나 지방에서 근무하는 선배들과 대화하기가 싫다..

 

왜냐면...

언제나 뻔한 레파토리를 말한다..

(봉사해야 한다)

(우리는 쉽지 않은 자리다)

 

(어느 누구도 비판하는 말도 없다)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나는 이방인인가 ㅋㅋ)

너무 고리타분하다..

꼰대같은 느낌이 든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

그럼 나는 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노력은 해봤니?

그냥 이렇게 나의 하소연만 글로 남긴다 ㅋㅋ

 

절이 싫으면 땡중이 절을 떠나야 하는데..

떠날 용기가 솔직히 없다..

이제 나의 나이 41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늘 저녁은 '생아구찜' 중 20,000원 주문했다.

 

나의 엄마는 아들 얼굴이 어둡고 기운이 없으면

생아구찜을 시켜주셨다.

자신도 아구찜을 좋아하시지만

통통한 살은 나에게 양보했던 우리 엄마..

 

이제 나는 아빠이고 남편이다

도망치고 싶지도 미안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당당히 나의 일을 계속 최선을 다할뿐이다.

 

주문한 아구찜이 도착해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먹었다.

곰돌아....

괜찮다....

그런 클레임에 기죽지마....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니까...

 

연락이 안되면 문자나 카톡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남기면 될 것을'

 

난 솔직히 주말이든 평일이든

'연락이 잘 안되네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가 없다.

난 솔직히 전화오는 걸 받지 않은 전화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 전화기를 보여주세요..

언제 나에게 전화를 했나요?

그 증거를 보여주세요...

 

클레임으로 전화 건 사람은 밝힐수 없단다.

그리고 나도 물어보기도 어처구니 없다.

선냥하고 순진한 고객들은 나에게 웃음띤 미소로 노고 많으십니다.

말해주는 사람들이다.

인성이 드럽고 내가 낸데 하는 사람들이 꼭 그런 전화를 한다..

 

블로그는 나의 편...

분명 클레임 받은 원인도 나에게 있다..

하지만 곰돌아..

기죽지 말라...

 

엄마가 그립다..

나의 모습을 보고...

아구찜을 시켜주는 엄마가 그립다..

 

나는 엄마처럼 가족을 지킬수 있는 사람인가..

되물어보면 부끄럽다..

이기심이 강한 나인가..

가족보다는 어쩌면 내가 우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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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세상으로 나왔을 때도 분명히 다른 갓난 아기처럼 '응앵~~'하며 울면서 나왔고

가족들은 웃으며 나를 반겨주었다.

어머니는 특히 아들이라는 이유로 더욱 기뻐했다고 한다.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항상 말씀하신다. '우리 금덩어리'

참고로 우리 엄마는 6남매에게 줄기차게 '보석덩어리들, 금덩어리들'이라고 불러주셨다.

엄마의 말씨 덕분에 우리 6남매는 '보석으로, 금으로' 강하게

자신을 단련하며 자존감이 강한 사람으로 훌륭히 성장했다.

 

나의 딸에게도 내가 '우리 금덩어리'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사실,

금덩어리야, 너의 이름은 이 아빠가 직접 짓었단다.

'지혜로움'과 '보물'이 들어간 한자로 말이야. '혜진'

 

타인들은 이렇게 지적하기도 했지,

유명한 철학관이나 절 같은 곳으로가면 재물운과 인복이 많은 이름 지어준다며 추천해 주기도 했단다.

우선 너 운명은 네가 만들어가는 거라고 아빠는 생각해,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평생 부르고 싶은 이름이니까,

 

엄마와 아빠가 이쁜 이름 2개를 선택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의견을 여쭤보고 결정한 거니까,

자부심을 갖고 너 이름대로 살아갔으면 좋겠다.

어쩌면 네가 그렇게 살았으며 하는 마음과 이 세상에서 그렇게 대우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단다.

꼭 그렇게 살아주라. 엄마,아빠의 바램이다.

 

1980년 먹고 살기가 힘든 시절 나의 아빠, 엄마도 6남매를 먹여 살리라.

고단한 삶을 사셨다. 아빠는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엄마는 일용직 식당

요리사로 봄이 되면 두 분은 농업인이 되셨다.

 

남의 밭을 관리해 주는 조건으로 적은 임차료를 내며 자연의 선물을 소비자에게 주는 농업인이셨다.

산딸기와 뽕나무(오돌개) , 앵두나무, 밭에 심어둔 야채가 상품으로 이쁘게 성장하면 수확하여 시장에 내다 팔았다.

내가 살던 동네는 주민 대부분이 우리 부모님과 별반 다름없는 직업에 종사했고

봄이 되면 산딸기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난 어릴 때 친구들과 같은 추억을 갖고 있다.

 

'인근아, 혁아, 배고프지 않아,?' '응, 배고픈데,

그럼 우리 밭에 가서 산딸기 한 바구니 따와서 설탕 넣고 비벼 먹을래'

'밭에 간 김에 그럼 앵두랑 삐삐도 따와서 먹자'

(한 바구니에 산딸기 넣고 설탕 듬뿍 넣고 숟가락으로 야무지게 비벼서 먹고

토스트빵에 우리가 만든 산딸기잼을 듬뿍 넣고 한 입 베어 먹으면

그 어떤 부자보다도 부럽지 않는 추억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지금 시장에 판매되는 산딸기 그 시절 맛이 나지 않는다.

한바구니에 산딸기가 들어가야지 그 맛이 나려나 한번 해볼까.

그 때 우리들 아빠는 인분뇨를 어깨에 메고 지게로 옮겼던 기억이 난다.

농약으로 땅을 관리해서 그런지 지금은 산딸기 나무들이 기운이 없어 보인다.

왠지 바람이 불면 흔들 풍선처럼 왔다리 갔다리 할 것 같은 나무 모습이다.

 

우리 남매도 추억이 있다.

'아빠가 한바구니당 천원씩 쳐줄테니까' 마음껏 따라며 금전관계는 확실하게 계산하셨던 추억,

그리고 점심때 먹었던 자장면 맛은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산딸기 따는 모습은 이런 행동이었다.

 

'산딸기 하나 따서 바구니에 담고, 또 다시 산딸기 하나 딴 거는 내 입으로 담았다'

아빠는 그 모습을 흐뭇해 하시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곰돌아, 너한테는 아빠가 천원 주면 안되겠다. 누나들은 따는데 바쁜데

너만 먹는데 바쁘네, 아빠가 돈을 받는 게 맞는거 같은데, 천천히 따렴.'하고 웃으며 말했던

그 시절 젊은 나의 아빠가 무척이나 그립고 아빠가 보고 싶다.

 

또 한가지 잊을 수 없는 맛이 있다.

바로 산딸기 속 벌레가 잠시 휴식하는 것도 모르고 입으로 사정없이 넣었던 그 무지막지한 묘한 맛.

누가 그 맛을 알겠는가,

톡 쏘면서도 고약한 그 맛,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나는 뱉지 않고 그 맛을 음미했을까,

미식가가 되고 싶었을까, 그 맛은 벌레에 따라서 확연히 달랐던 기억이 난다.

신기하게도 어떤 벌레인지는 확인하지 않았던 그 때의 나,

아마도 그때 산딸기를 업종으로 했던 사람이라면 그 맛을 아시겠지?

 

하여튼 그 시절에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었다.

당연히 부모님의 일을 도와가며 살아가는 게 행복이고 즐거운 일상이었으니까.

그 일상속에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은 바로 가족애만 있으면

어떤 고난도 웃음과 보람으로 시간이 지나면 이렇게 소중한 추억이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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